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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권력의 근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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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권력의 근거는?

 

2015년 3월 13일 베드로 성당에서 예배 중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 (Jubilee of Mercy)을 발표하고, 2015년 12월 8일부터 2016년 11월 20일까지 모든 가톨릭 사제에게 낙태한 여성과 시술 의사를 용서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이 끝난 다음날, 자비의 희년에 모든 사제들에게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낙태의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할 권한을 무기한 연장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었을 때에도, 주교나 소수의 성직자에게 낙태한 여성을 용서하는 권한을 부여한 일이 있었지만, 원래 교회가 1세기부터 낙태를 ‘사악한 일이며 살인죄를 범하는 일’이라 가르쳐 왔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교황의 선언은 매우 파격적입니다.

임신 중에 복용한 약물 때문에 태아가 정상적이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산부인과 의사가 권했던 양수 검사 결과로 뱃속의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낙태를 고민하지 않을 산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더욱이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라 고통스런 마음으로 태아를 지우려는 소녀 앞에서, 지카 바이러스로 인해서 소두증이 의심이 되는 태아를 지우려고 생각하는 임산부 앞에서, 낙태는 죄 짓는 일이니 안 된다고 임산부를 설득할 사제들이 얼마나 되며, 그 말을 따를 여성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사제에게 낙태의 죄를 범한 사람들을 용서해 줄 권한을 부여한다는 선언은 그 동안 낙태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여성을 위로하는 말이고, 인권(Human rights)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환영 받을 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은 “교황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상처를 입은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할 자격은, 가톨릭교회 안 “성직자의 서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성직자에게 위임해 준 일”이라 믿습니다. 또한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일”이지, 교황이 성직자에게 필요에 따라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권한이 제공해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위 성직자만이 낙태의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 이유는, 죄를 지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거나 경감해 주는 일이, 교권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혜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올 한 해 한시적으로 주어졌던 권한, ‘낙태라는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권한을 주교나 고위 성직자로부터 일반 성직자에게까지 앞으로도 계속 주어진다는 선언 속에 담긴 교황의 권위’와 500년 전 면죄부를 사기만 하면 산 사람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죄도 용서해 줄 수 있다며, ‘면죄부를 팔아가며 베드로 성당을 지었던 교황들이 면죄부를 팔았던 그 권위’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차이라면 500년 전에는 ‘교회가 돈이 필요해 교황의 권위로 돈을 만들어 교회 건물을 짓는 일’에 사용했다면, 지금은 세속화된 사회라, 교황의 권위를 사용해 ‘약해진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교황의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 혹시 아닐까 싶습니다.

내년은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기념하는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과거와 비교해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변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은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이 가진 권위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며 자신들의 의사들을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지도자들이 가진 힘이나 그들이 누리는 권위의 근거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토요일마다 광화문에서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분들이 정치 지도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고 교권에만 목을 멘 교회 지도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강경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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