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기독시론 분류

성전에서 분노하시다!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6

 

성전에서 분노하시다!

요2:15-16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하셨다. 유대인 남자들이라면 “여호와 앞에 모여야 할 것”(신16:16)을 요구한 3대 절기 중 하나인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 예수님은 대목을 맞은 상인들이 점령한 소란한 장터 같은 ‘이방인의 뜰’(성전 뜰은 이방인의 뜰→ 여인들의 뜰→ 남자들의 뜰→ 제사장의 뜰로 들어가는 구조)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발하셨던 것이다.

단순한 분노 정도가 아니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며 상을 엎으셨다”(요2:14-15)고 했다. 예수께서 일명 ‘성전 난동 사건’으로 불릴 정도의 소란을 일으키신 것으로 묘사한 셈이다.

요2:12-22절에 기록된 이 사건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사역 말기에 배치됐다. 반면에 요한은 예수님의 첫 표적인 포도주 사건 바로 다음에 배치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복음주의 신학자인 김세윤 박사와 성서유니온의 『매일성경』 집필자인 J.R.힐(Hill) 등은 이 사건이 두 번 있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몇 번이었든 요한이 예수님의 ‘심판’을 포도주가 상징하는 ‘구원’과 대비시키려 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참된 예배와 메시아를 맞으려는 자세는 전혀 없이 장사하는 재미로만 가득한 성전과 형식주의와 편의주의만 난무하며 거저 의무감만 있는 제사에 분노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제사를 기쁨을 상실한 제사,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깨진 제멋대로의 제사로 여기셨다. 그래서 마치 과격분자가 제사를 방해하는 것 같은 소동을 일으키기까지 하신 것이다.

그들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죽기 전 성전에 가서 제사하는 것이 평생소원이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았기에 예루살렘까지 흠 없고 점 없는 짐승을 몰고 오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예루살렘에 와서 짐승들을 돈 주고 사서 제사하는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짐승을 팔게 하고, 성전 안에서 판 짐승만 제물로 합격시키며 비싼 바가지요금을 받고, 돈으로 예물을 드리는 사람들에게 높은 환율로 성전용 돈을 환전하게 한 것은 심판받기에 충분했다.

김세윤 박사는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을 ①성전 청결, ②이방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유대인들이 장사 자리로 차지하고 있었기에 이방인들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 ③착취 행위에 대항한 혁명, ④순전히 구약에서부터 오는 선지자적 시위, 상징적인 데모로서의 sign-act 등으로 정리하며 ④의 해석을 지지했다. 메시아로서의 sign-act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분노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장사하는 집이 된 것에 대한 ‘심판’이었고, AD 90년경의 교회를 향한 ‘경고’였다. 철퇴 맞은 상황! 그러나 적대적인 유대인들조차 예수님의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없었다. 거저 ‘니가 뭔데?’식의 반응이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타락한 ‘이 성전을 헐라’며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셨다. 말의 표적성을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46년이 걸린 성전인데 3일 만에?” 문자적, 물리적 해석으로 오해 했으나 이는 당신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자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 회복 촉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