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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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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순절에...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나라가 뒤숭숭하고, 국정이 혼란스러우니 백성들의 시름도 쉴 사이없이 요동친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 1:7)라는 말씀이 예언하듯 시대는 바야흐로 다시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듯하다. 냉전 후 간신히 유지해왔던 화해 무드, 그리고 화해와 상생의 세계화는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 야만적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자국보호주의는 오래전 서구에서 이미 실험을 끝낸 정략인데, 결국 폭력의 전쟁으로 치닫지 않았던가. 그런데 골목 싸움 같던 갈등이 대대적인 전쟁 모드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를 갈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은 갈등 해결을 힘으로 하려한다. 군비 확장이 그것이고, 미사일이나 핵무기 개발이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쉐퍼의 근본 질문을 다시 던져야할 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러다 어느 덧 사순절에 접어들었다. 교회절기를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사순절이란다. 분주하던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묵상을 할 때다. 고요 속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할 순간이다. 우리는 너무 인간의 논리와 정략을 내세워 살아오지 않았는가. 죄악의 무게를 홀로 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신 주 예수님을 만나야할 때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주님이 살아가신 길, 산상수훈으로 남겨주신 삶의 길을 묵상하고, 그 샘에서 생수를 마셔야할 때다. <1984>(G.오웰)이 보여주듯, 사람을 감시하고, 그 어떤 닫힌 체제 속에 가두어 통제하려는 시스템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주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앞으로 한달 지나면 고난주간, 부활절이 다가온다. 그 사이 성도들은 사순절을 지나간다. 고난 없이는 영광에 이를 수 없다. 십자가의 고난은 곧 십자가의 영광임을 예수께서 보여주셨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도, 혼란스런 나라 정세도, 개인적인 삶의 상황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산상수훈에서 보여주신 하늘의 해법이 지상의 난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은혜를 만나보자. 인간 죄성의 절대 포기와 은총에의 절대 의지 속에서 이렇게 속으로 외치며 기도하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사순절에 오직 한 기도, 무수한 언어와 수식어를 내려놓고 이렇게 기도해보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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