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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사역 | 직업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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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용일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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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더욱 빠져들게 하는 소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의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이 영화의 화두는 나치의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인데 그 일을 집행한 사람들의 죄의식이라는 측면으로 다룬다.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강제수용소를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 주인공이 히치하이크를 했는데 운전하는 중년 남자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사형집행인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서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 거요. 그는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 남자는 자기가 본 사진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발가벗은 유대인들이 길게 늘어서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고 목덜미를 쏘아 유대인들을 죽이는 군인들 위쪽에 장교 하나가 다리를 흔들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싫증난 표정이었다. 일이 생각처럼 빨리 진행되지 않은 것처럼,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약간 만족스럽고 흐뭇한 기색이 드러나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주인공이 외친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차를 세우고 새파랗게 질려 소리쳤다. “당장 차에서 내려!” 급커브를 몇 차례 강하게 틀면서 난폭하게 차를 운전해갔다는 그 남자에게 한 방 먹여준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통쾌했다. 그저 직업이니 그렇게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는 주장이 너무 역겹고 더러웠다. 하나님이 주신 직업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직업이니 사람을 죽여도 좋은가? 명령 받았으니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독일인들이 거의 히틀러의 아리안우월주의에 박수치며 날뛰었다던 그 광기에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기 힘든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안타까움에 대해서 스티븐 킹의 소설, 영화로도 나온 <그린 마일>이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는 간수 브루터스가 간수장인 폴에게 하는 말인데 영화에서는 폴이 말하는 것으로 각색되어 있다. 내용은 같다.

존 커피라는 거구의 재소자를 전기충격으로 사형 집행하는 일을 그들이 해야 했다. 존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어린 자매를 추행하고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있었다. 너무도 분명한 증거로 확정판결이 난 사건이어서 그 사실을 밝힐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 무죄한 사람을 처형해야 하는 간수들의 딜레마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린 지금 하나님이 만드셔서 이 땅에 보내신 선물을 죽이는데 골몰하고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다시 섰을 때 하나님께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게 내 직업이었다고, 내 직업이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해야 할까?”

사형을 집행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래저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타까움과 두려움으로 그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직업적으로, 내 직업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직업을 모독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직업이기에 수행해야 할 때 우리 크리스천 직업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하지 않는 대안이 없을까,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많은 고민을 하면서 찾아보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제한적으로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이 거의 없어졌으니 힘들지만, 위의 상황에서 예를 들어본다면, 사형당해 육신이 죽어갈 죄수를 향한 안타까움으로 그에게 복음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간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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