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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과 믿음의 교회 YES, 빚과 죄의 교회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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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과 믿음의 교회 YES, 빚과 죄의 교회 NO

 

오랜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경제 정책이 금리 상승을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전 세계의 금리상승을 유도하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도 역시 금리상승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금리 상승이 단 한번만 된다고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올라갈 것이라는 보도가 있고, 그것은 상당한 정도의 금리상승을 의미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상승은 국내 소비와 투자 등 내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에 빚을 내 부동산을 구입한 자는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다른 지출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자부담을 하기 어려운 자는 다시 부동산을 팔던지 혹은 최악의 경우에 어렵게 취득한 부동산을 경매에 넘겨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 경제정책을 세워야 할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대한민국 내 많은 교회들이 지고 있는 부채가 생각 이상으로 많으며, 또한 많은 교회들이 은행대출을 갚지 못하므로 경매에 붙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7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경제는 부동산 활황을 유지했기 때문에 개인 혹은 기업들도 빚을 내 부동산을 구입했고, 역시 많은 교회들도 빚을 내 성전건축과 교회 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빚을 내 교회 사업을 하는 것이 믿음이 많다고 인정되었고, 성서적임을 주장하는 풍토가 유행했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 사회가 과도한 가계부채에 대해 반성을 시작했고, 그 바람은 교회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말로 ‘신용’이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크레디트라는 의미이고, 이것은 믿어준다는 뜻이다. 은행은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 믿음에 상당한 비용을 빌려준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그가 이자와 원금을 갚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때 사용되는 말이 ‘부채’ 즉 ‘빚’이라는 용어다. 부채는 영어로 debt, 독일어로는 Schuld를 의미하는데 이들 용어에는 “빚”이라는 뜻 외에 “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빚을 갚지 못하면 그는 죄인이 된다(마태18:34).

그렇다면 교회는 빚과 죄의 영역이 아닌 믿음과 신용의 영역에 있어야 하며, 믿음과 신용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성서진리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이 세우신 경제원리는 첫째로 창세기 1장의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교회의 경제는 하나님의 축복에 서 있을 때 늘 잘 되어야 하고, 잘 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근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한 빚을 지게 된다면 죄의 영역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경제원리는 충만한 경제의 열매를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경제열매를 다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해야 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유럽의 자본-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의 공공 영역을 발전시켜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모델이다. 경제적 자유가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다.

성서 경제 원칙을 교회가 준수하면 교회는 항상 풍요로울 수 있고, 베풀고 나눌 수 있다. 믿음과 신용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로서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부채의 영역에 서 있고, 심지어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으므로, 하나님께 바쳐진 헌금 중 상당액을 은행이자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하나님은 믿음과 신용의 하나님이지 빚과 죄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성서가치”를 세우고 교회운영을 하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화 문산교회 하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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