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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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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1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요3:22-36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이는 유대광야에서 외친 침례(세례)요한의 메시지(마3:2)였고, 예루살렘을 뒤로 하고 요단 계곡, 즉 침례요한이 사역하는 근처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첫 메시지(마4:17)의 주제이기도 했다. 침례요한과 예수님이 동시에 사역했다는 보도는 요한복음이 유일하며, 기록자 사도 요한은 그것도 동시에 침례 베푸는 사역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은근히 부각시켰다. 그래서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의 경쟁심을 부추기려 했던 것(26절)은 당연히 보일만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침례요한이 제자들의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종속적인 자기 위치를 명확히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침례요한은 자신이 그저 신랑의 친구일 뿐 결코 신랑은 아니라고 했다. 캠브리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호주 멜보른 리들리 대학의 학장이기도 했던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성경주석 뉴 인터내셔널 요한복음』(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John)에서 “유대 풍습에 신랑의 친구는 신랑에게 신부를 인도하는 중요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신부의 인도가 끝나면서 그의 책임도 종료되며, 혼인 무대에서 중심인물은 아니다.”라며 “혼인은 신랑만의 기쁨이 아니라 신랑 친구들의 기쁨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증거하던 침례요한은 제자들의 보고를 오히려 기쁨으로 여겼다(29절). 정말 고대하던 소식이었기에 누린 자족과 평안이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요한의 증거를 믿지 않고 사람들의 인기를 탐하며 절망적인 보고를 했지만 침례요한은 답답하고 분통터지는 제자들 앞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라는 인간이 말할 수 있는 언어 중 가장 고상한 한 마디로 뚜렷한 최후 진술을 했다. 결코 위기를 모면하려는 입장표명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애초부터 파당을 지으려는 생각도 예수님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려는 야심도 없었다. 그래서 요한은 들러리 같이 낮아져도 예수님만 빛날 수 있다면 마냥 행복했던 것이다.

반면에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보였던 시기심은 우리에게도 무서운 영적 질병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 그리스도로서 만물 위에 계시면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이 땅에 증언 하신다”고 강조하며(27-30절) 침례요한이 “신랑은 예수님, 나는 들러리, 시기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명확한 태도로 시기심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했다. 바로 이거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유일한 주인공이심을 고백할 때 시기심은 사라진다. 결혼 주간이 끝나는 날 신랑 신부가 하나 되는 것을 확인하고 “It’s finished”를 선언하는 신랑의 친구, 그게 바로 성도의 사명이다. 예수님도 흥하고 나도 흥하는 ‘덩달이’는 불순한 동기, 절대 조심해야 한다.

한편 4장 2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으로 보이는 ‘침례’는 ‘회개의 침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23절의 “요한도…물이 많음이라”라는 묘사는 예수님과 요한이 베푼 것이 ‘침수 침례’였음을 보여준다. 침례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지만 ‘예수님의 명령’(마28:19)이자 여러 증인 앞에서 갖는 ‘예수님과의 결혼식’이며,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는 ‘연합 결단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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