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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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131년의 자랑스런 신앙의 역사를 돌아보자”
인천ㆍ강화의 기독교 유적지 순례 코스 관광 상품 선보인다
2016년 07월 20일 (수) 10:04:50 윤용상 기자 yys@ycnnews.co.kr
   
   
   
   
   
   

“가족과 함께 131년의 자랑스런 신앙의 역사를 돌아보자”

인천ㆍ강화의 기독교 유적지 순례 코스 관광 상품 선보인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역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인천은 짜장면의 원조,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 대한민국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 등 대한민국의 최초와 처음이 가장 많은 도시다.

이러한 소위 원조도시 인천은 131년 전인 1885 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처음 들어온 성시(聖市)이기도 하다. 복음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금은 3천여 교회와 3백만 인구 가운데 100만의 크리스천이 있으며, 자랑스런 기독교 유적지와 관광 자원이 많이 있다.

이처럼 기독교의 자랑스런 관광자원을 발굴, 인천의 기독교인들은 물론 전국의 기독교인들과 인천을 방문하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들에게 인천의 자랑스런 기독교 역사를 소개하고, 특별히 신앙의 다음 세대 전수자인 청소년들에게 인천시민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길러주기 위한 기독교 관광 순례코스가 인천관광공사와 인기총, 사단법인 글로벌연합선교협의회, 연합기독뉴스에 의해 상품화될 전망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기독교 국내 성지순례 전문 홀리원투어 회장 박경진 장로와 한국교회사 김수진 교수, (사)글로벌연합선교협의회 윤용상 이사장, 감리교영상선교연구소 유은식 목사 등은 기독교관광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14일과 15일 이민사박물관을 시작으로 내리교회 등 인천의 기독교 유적지와 교산교회와 교동교회 등 강화의 기독교 유적지를 탐방했다. 이에 인천과 강화의 주요 기독교 유적지를 소개해 본다.

인천 기독교관광 순례코스는 당일코스를 비롯해 1박2일 코스 등 선택 관광이 가능하며 조만간 상품이 출시될 예정이다(<편집자 주>

 

한국이민사박물관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 선조들의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천광역시 시민들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뜻을 모아서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이다.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인천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국내 정세 및 하와이 상황을 살펴볼 수 있으며,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의 애환과 미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개척지로서 발자취를 담은 사진 자료 및 유물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중남미를 비롯해 전 세계 각국으로 진출해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7백여만 해외 동포의 근황과 염원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탑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부부 선교사가 처음 복음을 들고 제물포에 입항을 하게 된다. 이를 기념하여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95년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탑을 세우고 매년 4월 5일 선교사 입항 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리교회

 

내리교회는 1885년 4월 5일 한국 최초의 감리교 공식 내한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의 제물포 체류로 시작된 한국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하와이에 공식 이민단을 보낼 때 최초의 해외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이기도 하다. 또한 내리교회는 아펜젤러, 존스 선교사의 제물포, 인천, 강화지역 선교활동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 영화학교, 엡웟청년회 등을 통해 민족교육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내리교회는 한국인 최초의 목사인 김기범 목사를 비롯해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신홍식 목사,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고 할 수 있는 훈맹정음의 창시자 박두성, 한국 여성교육의 선구자 김활란 박사 등을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영화초등학교

 

1892년 4월 미국 여선교사 존스(G. H. Jones)가 인천 중구 내동에 있던 내리교회에서 사립 영화학당으로 설립하였다. 개교 당시 학생 수는 한 명이었으나, 1905년 47명으로 학생 수가 증가하자 인천 중구 경동 싸리재에 409㎡(120평) 규모의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고 교사도 5명으로 증원하였다. 1906년 8월 수업연한을 4년으로 개편하였는데, 교과목은 수신(修身: 도덕)·국어·한문·일어·산술·지리·국사·서예 등이었으며, 제1회 졸업생 9명을 배출하였다. 1910년인천시 동구 창영동 현재의 위치에 벽돌로 된 2층 교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1912년 8월 영화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1917년 영화유치원을 부설하였다. 1922년 9월 영화여자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23년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였다.

 

국제성서박물관

 

지난 1995년 초대 관장 한경수 감독에 의해 설립된 국제성서박물관은 고대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에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등 희귀성서를 전시하고 있다. 동 박물관은 성서수집과 성서학연구에 평생을 바친 박물관장 한경수목사가 세계 44개국에서 모은 10,000여 점의 성서와 미국의 성서연구가 데이비스 웨이커필드 박사가 기증한 8,000여 점의 성경이 소장돼 있다.

이 가운데 기원전 제작된 히브리어구약과 헬라어신약 성경, 고대 이집트 어로 기록된 파피루스 바울서신은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1456년 발간한 구텐베르크 성경, 1947년 양치기 소년이 쿰란 동굴에서 발견한 이후 원본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사해(死海)사본 복사본 등도 희귀한 소장물이다.

 

한국선교역사기념관

 

지난 2008년 지하 1층 지상 4층의 종합문화 기념관으로 건립된 ‘한국선교역사기념관’은 1층은 세계기독교관, 2층은 한국기독교관I(기독교 전래기~일제강점기), 3층 한국기독교관II(6.25 한국전쟁~예수 오실 때까지)로 각각 꾸며져 세계 기독교의 역사와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시대적인 흐름 속에 배열하면서 각 층의 전시공간을 개념별로 재구성,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1층의 세계기독교관은 출애굽 사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등을 중심으로 신구약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적 역사를 사실적으로 구성하고, 2,3층에는 한국교회의 시작과 고난 극복의 과정 등 한국선교 역사와 성령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는 한편,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한다.

 

강화교산교회

 

1892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이며 인천 내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존스 목사가 몇 차례 강화도에 들어오려고 시도했으나 강화 유수의 거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이 때 강화도 시루미(지금의 양사면) 출신으로서 인천에 있던 이승환이 예수를 영접하고 인천 내리교회에 출석을 하게 된다. 1893년 여름, 존스 목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는 이승환의 요청으로 북쪽 해안까지 왔으나 지역 유지인 유학자 김상임의 반대로 육지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자 이승환은 한 밤중에 어머니를 업고 해안 갯벌을 지나 존스 목사가 있는 배로 가서 어머니가 세례를 받게 된다. 선상 세례 후 존스 목사는 전도사와 전도부인을 보내 이승환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데, 이것이 강화도 최초 교회인 교산교회의 시작이었다.

 

교동교회

 

1933년에 지어진 강화 교동도 최초의 교회인 교동교회. 상용리 선착장 부근에 있으며, 지금은 형태만 유지하고 있다. 해방 직전에 사라질 뻔 했던 종의 모습이 오래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강화읍교회(성공회)

 

대한성공회 강화성당(大韓聖公會 江華聖堂)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에 세워진 성공회 성당이다. 강화읍에 있기 때문에 강화읍성당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지어진 한옥 성당으로 2001년 1월 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24호로 지정되었다. 1896년(고종 33년)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찰스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e, 한국이름 고요한)가 건립하였다. 대한성공회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며,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1915년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배출하였으며, 당시 한글로 기록된 사제 서품장은 예배당 내에 보존되어있다.

 

강화중앙교회

 

1900년 9월 1일 상도리 교회에 다니던 주선일, 허진일, 최족일, 김봉일, 이살로메 등 10여명이 헌금한 15원으로 강화읍 천교하에 6칸짜리 가옥을 매입하여 기도처로 삼고 교회가 창립됐다. 이듬해 인 1901년 4월 5일 제물포지방 장로사(현감리사)인 선교사 조원시목사(제1대 담임)의 도움으로 현 위치에 기와집 25칸과 초가집 16칸을 206원에 사서 잠두교회 예배당을 봉헌했다. 1907년 8월에는 진위대 병정해산과 관련된 소동을 잠두교회 교인이 선동했다는 일진회의 모함으로 김동수, 김남수 권사, 김영구 3형제가 일제에 의해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1914년 7월 강화 최초로 서양식 벽돌교회를 신축 봉헌하고, 교회명칭을 ‘강화읍 교회’ 로 변경했다. 한국개신교회 최초의 교회역사책 ‘강화읍잠두교회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강화온수리교회(성공회)

 

온수리교회는 인천내동교회, 서울대성당에 이어 1906년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설립된 성공회 교회다. 온수리교회는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으로 인해 조선군과 일본군 사이에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교회에 기를 게양해 조선군에게 여러 가지 정황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또한 이 교회는 한 세기가 넘는 긴 세월을 선교뿐만 아니라 의료선교, 교육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이 곳은 27칸의 기와를 얹은 단아하고 아담한 한국형 한옥의 성당이라는 점이 역사적 보존가치로 인정돼 2003.10.27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52호(사제관 41호)로 지정됐다.

 

윤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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