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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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청심원 있습니다
  • 정찬성 목사
  • 승인 2017.01.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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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 목사의 강단여백

 

우황청심원 있습니다

 

유 권사님, 제 방 약통에는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이 몇 개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혈압이 높은 가정에는 상비약으로 몇 개의 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황청심원은 저에게 특별한 목회적 경험이 있는 약입니다. 고양시의 신생교회에서 담임전도사로 초년병 목회를 할 때입니다. 마을의 한가운데 조선기와집으로 잘 지은 뿌리 있는 집안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안 나오는 가정입니다. 대처에 나가 사는 다른 형제들은 더러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마 화곡동 쪽에서 양복점 대리점을 하는 열심 있는 형제라고 기억합니다.

 

중풍환자 전도했던 덕은리의 기억

 

교회로 다급한 전화를 했습니다. 형수가 쓰러지셨는데 심방을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그 가정이 교회에 나갈 기회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찾아갔습니다.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 침을 흘릴 정도입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며 살펴보니 제 소견으로는 도저히 나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시작은 했는데 큰일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한약방을 하시는 장로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는 다급한 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냐고 물었습니다. 우선 매일 심방하실 것, 당신에게 와서 우황청심환을 가지고 가서 먹일 것, 필요하면 당신이 무료로 침 시술을 할 것이니 염려마실 것..., 대충 이런 처방입니다.

당장 달려가서 자세한 말씀을 나누고 교인들과 아침저녁으로 심방하는 영적인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그 마을에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 굿, 당산나무 고사 등을 할 때입니다. 농악대를 앞세워서 집집마다 다니며 쌀과 돈을 거둬서 마을 기금으로 쓰기도 하고 마을 뒷산 당산나무에서 대동제(大洞祭)를 산신제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유 권사님, 교회 앞에서도 농악대의 풍물이 펼쳐집니다. 한참을 놀아도 안 나오니까 그냥 갔습니다. 마을 행사에 협조하는 의미에서 동참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아무리 마을에 협력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교회가 귀신 제사에 십시일반하는 것은 안 될 일 아닙니까?

 

당산나무 산신굿으로 지내는 대동제

 

유 권사님, 당시에는 마을회관과 노인정에 연탄난로를 땔 때입니다. 연탄 오백 장 값을 봉투에 담아서 들고 마을 회관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장으로 일하시는 권사님 남편 배선생을 만나서 마을 주민들 겨울 나는데 쓰시라고 난방비로 금일봉을 드리고 왔습니다. 당산제 복채도 피하고 마을에 협조도 하는 그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런 마을 분위기에서 매일 큰 기와집 중풍환자 치유를 위한 예배는 계속 진행이 되고 믿지 않는 마을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예배를 드린 다음에 장로님이 주신 우황을 눈꼽만큼 작게 잘라 숟가락에 개서 입안으로 흘려 넣고 기도하고 오길 계속했습니다.

또한 대처에 나가서 사는 친척들이 예배에 참석해서 찬송에 힘을 실어주고, 교인들도 더 열심히 참석하는 분위기에서 당신 힘으로 화장실 출입을 시작하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교회에도 오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덕은리 신생교회 교인들이 기도해서 중풍병자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조그마한 동네에 퍼졌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의 어깨는 으쓱해졌습니다. 그 후부터 우황청심원은 제 약통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개봉교회에 있을 때는 제약회사 다니는 청년에게 부탁해서 금박지로 싼 환을 여러 개 구해서 강화집의 어머니 머리맡에 놔 드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요즈음은 환이 아니라 마시는 우황청심원이 한국에서는 대세입니다. 브라질에서도 벌써 두 집사님에게 나눠드렸습니다. 그런 일이 아주 없으면 좋겠지만 사람일이라는 게 혹시나 몰라서 서너 병을 약통에 보관해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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