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표적, 물 위를 걸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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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표적, 물 위를 걸으시다
  • 연합기독뉴스
  • 승인 2017.07.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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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20

 

다섯째 표적, 물 위를 걸으시다

요6:16-24

 

마태복음14:22-33과 마가복음6:45-52에도 기록된 예수님의 물 위를 걸으신 수상보행(水上步行)의 기적은 마치 홍해를 맨 땅 같이 걸었던 모세의 출애굽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를 가른 것이 아니라 물 위를 걸으심으로써 모세보다 더 크신 분임을 강조한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 물에 빠진 내용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수상보행만 기록한 것은 수상보행 자체가 “바다 물결을 밟으시는 분”(욥9:8)으로 묘사된 바 있는 하나님과 동질(同質)임을 보여주는 표적(sign-act)이라는 것이다.

때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이 생계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으로 임금 삼으려 했으나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영적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이런 대중의 갈망을 피해 홀로 산으로 가시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호수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 뱃길은 6㎞쯤 되는 거리, 제자들은 항해 중 예기치 못한 큰 풍랑을 만났고(공관복음서에서는 ‘역풍’ 逆風이라 했다), 호수에서 난파 직전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방이 고원지대로 둘러싸인 갈릴리(가로 13km, 세로 21km), 지중해보다 200m나 수면이 낮은 웅덩이 같은 특이한 지형의 바다라 밤이 되면 산 쪽 기온이 낮아지고 바닷물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온도차 때문에 시시때때로 돌풍이 분다. 그러나 대부분이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 출신, 나름대로의 지식과 경험에 기술까지 갖췄기에 아무도 이의가 없었던 항해, 더욱이 “배를 타고 갈릴리 건너편에 가라”(마14:22, 막6:45)고 재촉하신 예수님의 지시에 의한 항해였다. 그런데도 감당할 수 없는 풍랑을 당했고, 그 풍랑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바로 그때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셨고, 공관복음서의 표현을 보면 제자들은 유령을 본 것으로 착각하고 심히 놀라 두려워했다. 마가는 이 현상을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 했다(막6:52). “내니 두려워 말라”(It’s I; Don’t be afraid),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얼마나 기뻤을까? 세복음서가 다 기록한 것만 봐도 예수님이 음성이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은 그들을 안심시키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배가 잘 도착하게 하셨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은 호변(湖邊)을 걸으셨는데 조명의 각도와 폭풍으로 공포에 질렸던 제자들이 물 위를 걸어오신 것으로 착각한 것일 뿐이며 요한도 표적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그렇다면 그 정도의 폭풍과 갈릴리 바다에 익숙한 제자들이 굳이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고 했다. 앞뒤 문맥 그 어디에도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시기 전에 제자들이 두려워했다는 내용이 없다면 그들의 두려움은 풍랑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 때문이었던 것이다. ‘유령을 본 두려움’과 ‘하나님의 현현(顯現)에 대한 두려움’ 중 어떤 두려움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억측이었다는 것이다.

기적의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제자들의 문제는 항해 중에 만나는 풍랑보다 기적의 주인공이신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풍랑은 어차피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고난, 비켜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는 분(시107:30), ‘원대로’ 먹여주고, ‘원하는’ 항구로 인도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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