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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혼인 기적 앞에서
2017년 10월 25일 (수) 16:24:55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가나 혼인 기적 앞에서

 

장자옥 목사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예수님의 공적행적에 있어서 최초의 사건이다. 이 기적을 기록했던 사도요한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있는 이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게 하려는데 있다고 천명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혼인잔치 기적의 의미와 이에 따른 결론이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하고 밝혀 알아야 한다.

그 당시 유대 나라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바닥나 버렸다는 것은 주인에게 있어서 씻을 수 없는 망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회복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한 주인공들은 누구였는가? 예수님과 마리아 제자들. 그리고 혼주, 신랑, 연회장, 하인들 동네사람, 친척 등이었겠다. 그런데 우리가 줄곧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잔치의 내막을 자세히 기록한 결론 부분에 있다. 요한 2:11에 의하면 그 혼인잔치에 100여명 이상이 모였을 텐데 그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오직 제자들뿐이었다.

100:12 겨우 십 분의 1에 불과한 숫자다. 여기 예수님의 기적 앞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예수를 믿을 수 있었던 부류를 열거하면 혼주 측 사람들이다. 신랑의 아버지 어머니를 누구보다도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드리면서 그 분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믿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언급은 없다.

두 번째로 신랑이다. 그야말로 잔치의 주인공이다. 만약 그 잔치가 그렇게 파장 되었다면 그는 평생에 수치스럽고 가슴 아픈 추억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야말로 그에게는 혜성 같은 분이셔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아무런 감격이나 찬사와 감사의 언급이 없다.

셋째, 연회장이다. 물론 연회장은 제 삼자였다. 그가 잔치를 그르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중임을 맡은 자로서 그 기적의 성과를 외면할 입장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물론 그는 전문연회장으로서 기적의 포도주에는 지극한 관심이 있었겠지만 정작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다만 신랑에게 달려가 “그대는 이 일을 예견한 것처럼 이 좋은 포도주를 준비해 두었다” 라고 말했을 뿐이다.

넷째, 하인들이었다. 그들은 잔치를 준비하느라 며칠 전부터 땀 흘리며 수고한 사람들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포도주가 바닥났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빨리 쉬게 되는구나 하며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했기에 그랬는지 예수님의 신령한 권위에 따라 행했는지 몰라도 그 분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명하신대로 순종했다. 이 과정에서 연회장도 그 대포주의 정체를 몰랐으나 물을 떠다 부은 하인들은 알았다고 했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그렇게 신나고 즐거운 일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들이었기에 이 예수님의 기적 앞에서 가장 들뜨고 목소리 높여 소문도 내야 할 사람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그 반응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

다섯째, 잔치에 참여한 친척들이다. 친척들이야말로 포도주가 바닥났을 때 꽤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친척들도 당연히 감격하면서 예수님을 우러러 뵈고 믿어야 할 것인데 그 당시에는 믿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상응하는 대접을 받기 힘들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여섯째, 잔치에 참석한 하객들이다. 불평하면서 돌아가 버린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아쉬워서 남아 있다가 새 포도주를 맛보고 입을 모아 “아 참고 기다리게 잡혔구나. 도대체 이 어찌된 일인가. 이렇게 맛있는 포도주를 어디서 구해왔단 말인가?” 제법 떠들썩하게 뇌까렸으나 예수님 때문인 것에 대해서는 알아보려한 사람이 없었다.

이렇듯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단하게 언급되는 이 기적의 잔치 앞에서 그토록 당연히 믿었어야 할 사람들 중에 한사람도 결단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오직 제자들만 예수님을 더욱 신뢰 하였다. 그렇다. 오늘날도 누구나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그런 기회가 아주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 믿는 것은 아니다. 보고 듣고 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께서 믿을 자에게만 주시는 귀하고도 또 귀한 선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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