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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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병아리
2017년 11월 03일 (금) 09:33:42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서리병아리

 

대부분의 닭은 봄에 포란(抱卵)을 시작해서 부화시킨다. 그런데 가을을 앞두고 포란을 해서 부화시킨 것을 서리병아리라고 한다. 게다가 봄에 한 번 포란을 한 암탉이 병아리를 길러낸 다음 이어서 다시 포란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옥상에서 기르는 청계(靑鷄) 암컷 두 마리는 봄에도 포란을 해서 세 마리의 병아리를 길러냈는데, 부화시킨지 두 달이 지나서 다시 포란을 시작했다.

녀석들이 포란을 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을 했다. 어미들의 체력의 문제도 있고, 여름의 끝자락이기는 하지만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데 포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에 아랑곳 하지 않고 두 마리를 성공적으로 부화시켰다. 매우 기특했다. 한 해에 두 번씩이나 포란을 해서 부화시키고, 병아리들이 독립할 때까지 길러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닌데 녀석들은 두 마리가 협력해서 두 마리의 서리병아리를 부화시켜서 잘 길러냈다.

봄에 부화시킨 병아리는 꼭 한 달 만에 독립을 시킨 것에 비해서 서리병아리는 두 달이나 돌보면서 지극정성으로 기르는 어미들을 지켜보노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더위에도 21일 동안 꼼짝하지 않고 포란을 했다. 그 과정은 인고의 시간들이었다. 거의 물만으로 연명을 하면서 비축했던 지방과 체력을 모두 쏟아 부었다. 그렇게 생명을 탄생시킨 녀석들은 볼수록 대견했다. 비록 미물의 짐승이지만 처절하리만큼 단식의 고통과 더위를 이기면서 생명을 탄생시켰고, 어린 생명들을 돌보면서 길러내는 헌신적인 수고는 어떤 면에서 인간조차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두 번째 부화시킨 병아리들은 어미들의 극진한 돌봄 탓인지 건강하고 당차게 자랐고, 그 모습은 생명의 신비와 존엄을 느끼게 했다. 그 중에서도 회색 병아리는 병아리답게 귀엽고 씩씩했다. 모이를 주러 계사에 다가가면 언제나 먼저 뛰쳐나와 빨리 달라고 재롱을 떨곤 했다. 이제는 독립을 시킬 때가 지났는데 여전히 병아리를 돌보는 것을 보면서 어미의 마음이 봄에 부화시킬 때와는 많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녀석을 지켜보노라면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살피는 모습은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이를 주러 갔지만 녀석의 행동이 어눌했다. 뛰쳐나오지도 않고 행동이 둔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살펴보았다. 숨을 자유롭게 쉬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계사로 올라가 살폈다. 전날과 다르지 않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는 먹이를 전혀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저녁나절 다시 올라갔을 때는 구석에 처박혀서 아예 누운 상태였다. 어찌할 수 없어 다시 다음날 아침에 계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다음이었다.

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닭의 질병은 닭이 졸거나 날개가 처지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전혀 그런 증상은 없었다. 뭔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는지? 아니면 이제 막 어미로부터 독립하려는 때였기에 봄에 부화한 녀석들로부터 심한 이지메를 당한 것 같기도 했다. 계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서열싸움이 좀 복잡하기 때문에 내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충격이 있었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체를 꺼내 땅에 묻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지만 녀석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참 씩씩하고 귀여웠는데... 인간으로서 지켜줄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었기에 미안한 마음이다. 녀석을 묻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생명의 짧은 시간이 세상에서 지났다. 미물의 짐승이지만 그동안 교감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서리병아리라는 이름을 지은 누군가가 있었겠지만 이름답게(?) 그러나 아쉽게 살다가 간 녀석이 눈에 밟힌다. 겨우 두 달여의 시간을 살았지만 매일 녀석을 지켜보면서 기뻤던 순간이 잔상으로 남아있다. 언제나 제일 먼저 뛰쳐나와 먹이를 재촉하던 녀석은 빠른 동작으로 재롱도 부렸다. 인간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아쉬운 시간 속에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쩌면 인간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기에 자신을 돌아본다. 단지 시간적으로 오래 산다는 것으로 존재하는 의미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사실은 언제 별세의 길을 가게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오늘 주어진 기회를 확인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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