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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도 전함은
-윤리, 사랑, 신앙이라는 이 세 가지 주제는 기독교회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2018년 06월 28일 (목) 17:32:42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신재철

초원교회

 

너희에게도 전함은(요일1:1-4)

-윤리, 사랑, 신앙이라는 이 세 가지 주제는 기독교회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요한 서신은 세 가지를 제시하고 이를 통하여 성도들이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검증하고 확신 속에 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 믿음이다. 참 신자는 예수는 육신을 입고 오신 참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한다. 둘째, 윤리이다. 믿음은 생활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셋째, 사랑이다. 믿음은 또한 사랑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윤리, 사랑, 신앙이라는 이 세 가지 주제는 기독교회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진 이가 형제 사랑을 외면할 수 없고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이가 윤리적인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Ⅰ.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요일1:1): 요한은 예수그리스도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소개한다. 태초란 인간 역사 이전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존재하신 분이다. 달리 말하면 영원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생명’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계신 자이시었다. 여기 아버지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그는 성자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 성자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된 것이다(요1:14). 그가 세상에 30년을 사셨지만 실제 예수님을 이런 놀라우신 분으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그는 12명의 사람들을 자신의 제자로 부르셨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요한 1서를 기록한 요한이다. 그는 주님의 제자가 된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세상에 나타나신바 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감격이 어떠했을까? 그는 더 주의 깊게 그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주목하면서 그의 손으로 그를 만졌다.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을 듣고 보고 만지기만 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증거하고 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기록하였다.

Ⅱ. 너희에게도 전함은(요일1:3): 요한이 이렇듯 생명을 다하여 증거하고 전하고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함이다. 사귐이라는 말은 참여하여 여러 가지를 서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삶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고 모든 좋은 것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이런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데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모양으로 지으신 중요한 이유는 사람과의 사귐을 위해서였다. 하나님과의 화목하고 사귀는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일어났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헐려졌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확인한다. 그의 삶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벧후1:4). 하나님과 같은 감정을 늘 같이 나눈다. 그가 죄를 보시고 슬퍼하실 때, 우리도 역시 같은 슬픔을 갖는다. 그가 의인의 승리를 보고 기뻐하실 때, 역시 우리도 동일한 기쁨을 갖는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다. 바로 그게 기도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데서 왔다. 세상은 전혀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다. 이 세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개개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저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귀며 그리고 그와 교통하는 일이다.

이런 교제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교제를 같이 경험하고 있는 성도와 성도들 가운데서 역시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 사도는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라고 말한다. 요한은 어떤 체험을 지금 추구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체험했음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우리의 생명 체험이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에만 몰두하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적 체험의 감격이 약화되고 둔화된다. 처음엔 뭔가 있는 것 같으나 결국 신앙적인 침체가 오는 것이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는 운동은 초대 교회가 가졌던 경험을 우리도 동일하게 경험하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교회 역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부흥 운동은 그 현상에서, 체험에서, 그 결과에서 동일한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그 체험에로 돌아가야 한다. 사도들은 이를 성도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Ⅲ. 우리가 이것을 씀은(요일1;4): 요한 일서가 기록된 중요한 목적은 바로 본 절에 있다. 그것은 성도들 속에 기쁨이 충만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요 말씀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영원히 살아 계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요(요8:12), 생수이시요(요4;10,14), 생명의 떡이다(요6;35,48). 우리는 빛을 받고, 물을 마시고, 떡을 먹어야 그 생명을 누리면서 살고 또 살아갈 수가 있다. 어떻게 빛을 받고 물을 마시고 떡을 먹을 수 있을까?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 또 듣는 것이다(요5:39).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있는 그 말씀을 듣는 것은 그 빛을 받는 것이요, 그 물을 마시는 것이요, 그 떡을 먹는 것이다. 날마다 살고 또 산다. 그래서 요한은 이 말씀을 증거하고 전하고 기록한 것이다. 마침내 이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참 생명은 기쁨을 주는 법이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했다. 우리가 이런 기쁨을 체험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증거는 실패할 것이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는 우리는 표면적인 것만을 보지 않고 이면적인 것을 보기 때문이다. 기쁨이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알게 된 것을 영혼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까지는 우리는 어떤 기쁨도 가질 수 없다. 그리스도는 기쁨의 근원이다. 그는 모든 축복의 원천이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하여 온다. 그러므로 요한이 다른 어떤 것을 의논하기 전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어떤 설교나 가르침도 언제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중심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본질적이시다. 그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그를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도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교회에는 진정한 메시지가 있을 수 없고 기쁨이나 위로가 있을 수 없다. 성도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제한다(고전12:3). 그 수단은 믿음이다(히11:6). 그리스도와 교제함으로써 성부와도 교제한다(요14:6).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다른 성도와도 참된 교제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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