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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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대한 도전과 항해
2018년 10월 12일 (금) 09:24:44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김홍섭 교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등산 이유로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란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 1919~2008)의 답이 유명하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자(孔子)는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라하며 산과 물을 좋아함이 군자의 멋임을 설명하였다. 그래도 바다는 인류에게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물론 용기있는 사람과 생계와 교역을 위해 위험한 바다를 항해해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역사에서는 바다와 관련된 사건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許黄玉, 33년~189년)에 대한 것을 들 수 있다. 인도 야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였던 그녀는 현재의 중국 남부지방을 거쳐 바다를 거쳐 가야의 남부 해안에 도착하여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가야국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성종 대의 학자 최부((崔溥, 1454~1504)가 성종 18년(1488년) 1월에 제주도에 파견되었다가 아버지의 상을 치르기 위해 배를 타고 나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13일을 표류한 끝에 중국의 강남 지역에 닿았다. 거기에서 그는 북경을 거쳐 6월 14일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섯 달 동안의 여정을 《표해록(漂海錄)》이라는 기록으로 남겨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소개하는 중요한 자료로 후세에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 문순득(文淳得,1777~1847)의 표류경험이 담긴『표해시말(漂海始末)』이란 책도 중요한 자료다. 그는 목포시와 64.9㎞ 떨어진 우이도(牛耳島, 현 전남 신안군) 홍어장수로 평범한 상인이었다. 문순득의 나이 25살 때인 1801년 12월에 흑산도 인근으로 홍어를 구하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를 경험하게 되었다. 표류 후 처음 표착한 곳은 류큐(琉球, 현재 일본 가고시마 현과 오키나와 현에 속한 섬 지역)였으며, 이곳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풍랑을 만나 여송(呂宋, 필리핀 북부)에 표착했다가 다시 필리핀에서 중국 광둥 지역의 마카오로 이동하였다. 그는 육지에 와서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베이징을 거쳐 약 3년 2개월 걸려 1805년 1월 8일 조선으로 돌아왔다.

제주 출신 선비였던 장한철(張漢喆ㆍ1744∼?)의 『표해록』(漂海錄)도 중요한 자료다. 그는 1770년에 과거를 보러 배를 탔다가 폭풍으로 표류해 1771년에 귀국하기까지의 경험을 쓴 기록이다. 폭풍을 만나 온갖 고초를 겪고 류큐국(유구국)이 있었던 유구열도(琉球列島)에 표류하면서 겪었던 일을 한문으로 기록한 일기문 형식의 책이다. 1770년 12월 25일 장한철을 포함한 김서일 등 일행 29명은 제주를 떠났다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5일만인 영조 47년 정월 초사흗날 무인도에서 안남(安南)의 상고선(商賈船)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다시 본토 상륙 직전에 태풍으로 선체가 파손되고 21명의 동행자를 잃고 8명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 표해록이다.

섬나라 일본에는 더 많은 바다 항해관련 자료가 있다. 1614년에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가신인 하세쿠라 쓰네나가(支倉常長)는 센다이의 개부자(開府者), 번주 다테 마사무네의 명령으로 대항해시대에 일본이 유럽에 파견한 외교사절단 대사로 대서양을 건너 1614년 일본인으로 처음 쿠바의 땅을 밟았다. 일본인들은 해외를 향한 마사무네의 야심찬 기개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쓰네나가의 용기를 영원한 귀감이라고 치켜세우고 쿠바 아바나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중국도 한 때 15세기 초 명나라의 제독 정화(鄭和) 함대를 7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인도·아라비아반도·아프리카까지 탐사하고 각지와 교류도하였다.

인류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통해 비로소 전 지구를 활동의 무대로 삼았다. 1492년 콜럼버스의 지리상 발견은 이를 더욱 촉발시켰으며, 그가 ‘인도’라고 믿고 도착한 땅이 바하마제도이며 그의 네 번에 걸친 항해는 쿠바 섬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해상왕국 백제와 신라 장보고 시대 동아시아 해양과 교역을 주도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우리는 바다를 중요시 하지 않았다. 일본의 사무라이 하세쿠라 쓰네나가(支倉常長)가 태평양을 건너던 1613년은 조선 광해군 때이며 그전 1611년은 임진왜란으로 불탄 경복궁 대신 창덕궁이 건축해 정궁으로 활용하며 국가를 재건하던 시기다.

장보고 이후 우리의 해양 역사에서 국가차원의 항해와 바다를 활용한 기록이 별로 없다. 전술한 표류의 기록과 조선통신사의 기록 밖에는 별로 없다. 조선 시대의 바다는 무관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일본은 태평양을 건너고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로 우리는 선진 문물을 적기에 수용 할 수 없었고, 마침내 일제 36년의 억압과 식민지를 당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눈을 바다로 돌려 대양으로 나가야 한다. 동시에 유라시아로 떨쳐나가 세계 경제, 교역, 물류를 개발하고 선점하며 활용하는 국가적 비전과 전략을 세워야한다. 젊은이를 가르치고 세계로 교육, 훈련 및 체험을 쌓도록 지원해야 한다. 근래 우리는 세계 5대 해운국과 세계 최고의 조선국의 위상을 누려왔다. 남북철도와 도로의 연결로 섬나라 남한에서 유라시아로 뻗쳐 올라가며 태평양을 연결하는 교두보의 지경학적 강점을 확대해야 한다.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의 “바다를 지배한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지금도 정확한 역사적 교훈이자 우리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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