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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용근 목사를 조명한다(17)
양용근 목사의 목회(길두교회)
2019년 02월 21일 (목) 17:00:19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양향모 목사

       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신풍리교회(애양원교회)는 담임목사가 사임함으로 목사 안수를 받게 될 양용근이 담임목사로 시무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미 길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시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신 양용근과 평양신학교 입학동기이며 같은 뜻을 가진 기도의 동지였던 손양원 목사를 후임으로 오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손양원 목사를 담임목사로 추천하여 허락을 받고 본인은 길두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1. 길두교회

길두교회는 1915년 2월 15일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에 세워진 교회이다. 길두교회는 해방 후 부임한 박석순 목사의 헌신적인 목회활동을 통하여 주변의 마을에 13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복음을 전하였고 면단위의 시골에서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등 지역 사회의 복음화에 큰 공을 세운교회로 알려져 있다.

양용근이 길두교회의 담임교역자로 오게 된 것은 1939년 4월이었다. 그가 목사안수를 그해 5월 순천노회에서 받았기 때문에 목사안수 받기 이전에 길두교회로 갔고 거기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양용근은 길두교회에서도 오래 목회를 하지 못하였다. 그는 이미 당국의 감시를 받는 몸이었고 수시로 형사들이 드나들어서 그의 설교와 목회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2. 당산제 금지와 금줄 제거

길두교회에서의 1년간 목회활동도 많은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한 일은 주로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도록 설교하고 가르친 일이다. 양 목사는 우리나라가 살 길은 오래된 미신숭배를 타파하여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길두교회가 있는 고흥지방은 바다가 가까운 곳이어서 어업과 농업을 함께하는 지방이었고 미신에 사로잡혀서 당산제나 무당굿이 성행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부임한 양 목사는 처음부터 당산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고 금줄을 철거하게 하고 봉안전 참배를 거부하게 하였다. 후일 그가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는 계기가 된 고흥지방 연합 사경회 인도가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이다.

1916년생인 마순안 권사가 길두교회에 처음 부임한 양용근 목사를 만난 것은 23살의 새댁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의 기억에 남는 것은 양용근 목사가 부임하여 당산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고 어린애를 낳은 집에서 금줄을 치는 것은 미신이니 치지 말라고 계몽하고 다닌 것이라고 증언한다.

당산제를 지낼 날자가 가까이 오고 당산제 유사(有司)들이 정해지자 양 목사는 유사들을 찾아가서 당산제를 지내지 말 것을 강권하였다. 하지만 부락민이 양 목사의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유사들은 늘 하던 대로 당산나무 아래애 돼지머리와 각 종 음식들을 차려놓고 제사를 드리기 시작을 했다. 이 때 양 목사가 나타나서 제사상을 엎어버리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임을 알려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고 제사 지내는 것을 도중에 그만 두게 했다.

금줄이란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삼칠일 동안 타인의 출입을 삼가도록 문 앞에 새끼줄을 꼬아서 아들이면 숯덩이와 고추를 간간히 달고 딸아이면 생솔가지와 숯덩이를 달아서 매는 줄을 말한다. 이것은 나름대로 일종의 풍습이고 또 산모와 아이의 위생을 염려하여 만든 지혜라고 생각되지만 양 목사는 이를 기복신앙이고 미신을 섬기는 토속신앙이라고 생각하여 이 금줄을 치지 못하도록 계몽하고 다녔다. 이 금줄을 치지 못하도록 계몽하고 다닌 속내가 있었는데 그것은 금줄을 제거할 줄 알아야 일본인들의 금줄인 시메나와(左繩)도 철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액운과 잡귀의 출입을 막는다고 이 시메나와 금줄을 대문이나 현관문에 친다. 우리의 금줄을 철거하는 것이지만 일본의 금줄도 철거하고 일본의 신사참배도 거부하자는 속내가 깔려 있는 행동이었다.

 

3. 봉안전 참배 금지

양 목사는 또 봉안전을 참배하지 말도록 가르쳤다. 봉안전(奉安殿)이란 ‘어진영’이라고도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백성들을 일본국민(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서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관공서나 학교 등에 천황의 사진이나 칙어 등을 모셔놓고 신사참배를 하지 못할 때 대신 참배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 한국인들을 충실한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학교마다 봉안전을 배치시키고 일본 천황의 얼굴을 기억하게 하고 일본 식민주의 정신을 교육하는데 이용했다.

양용근 목사는 우상숭배에 대해서 특별하게 교육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상숭배 때문에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얽매여서 사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비단 봉안전 같이 일본 사람들과 관계된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족의 무속신앙에서 오는 우상숭배도 철저하게 금지 시켰다.

4. 고흥지방 연합 사경회

양용근 목사가 순천노회사건으로 검거되어서 실형을 받게 된 중요 사건인 고흥지방 연합 사경회도 길두교회 시무 때에 있었던 일이다. 1940년 봄 길두교회와 같은 포두면에 소재한 송산교회(전남 고흥군 포두면 송산리)에서 양용근 목사를 강사로 고흥지방 연합 사경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양 목사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멸망한다.’는 주제로 설교를 했다. 여기 우상숭배는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항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라는 것이었다. 양 목사는 일본 형사들의 감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교를 각오하고 우상숭배가 큰 죄임을 내세워서 신사참배에 반대해야 함을 강하게 외쳤다. 김해연은 그의『한국교회사』에서 “그런데 양용근(梁龍根) 목사는 1943년 12월 5일 추운 감방에서 순교한 것이다. 누구보다 양 목사는 고흥지방 도사경회(都査經會)에서 일본의 신사참배 부당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기에 더욱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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