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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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용근 목사를 조명한다(20).
순천노회 교역자 수난사건 2.
2019년 03월 21일 (목) 10:32:15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양향모 목사

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1. 순천노회 노회원이 구속된 원인

순천노회 노회원 전원이 구속된 이 사건의 원인은 순천노회만 가진 특별한 사건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고 일제가 한국교회 전체에 가한 박해가 주된 원인이다. 일제 말기인 1937년에 일제가 대동아(大東亞)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조선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를 위하여 조선인들을 확실하게 내지인화 시키는 작업이 필요했고 이 일을 위해서 동원한 것이 천황제 이데올로기이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들도 모두 천황을 신으로 받들어 섬김으로 하나가 되게 하였다. 그 신앙의 힘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계획아래 조선의 모든 학교와 교회에 까지 신사참배를 강조했다.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학교는 폐교처분을 했고 교회도 국민의례를 내세워 신사참배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신사참배 강요는 많은 교회들에게 저항을 받았고 많은 성도들이 신사참배는 계명이 금하고 있는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이런 저항에 부딪히자 일제는 신사참배를 주도하는 위험인물들을 검거하기 시작을 하였고 1940년 9월 20일 전국의 주요 인물들의 검거를 단행했다. 1940년 9월호의 『高等外事月報』에서 이 전국 일제 검거 사건을 “치안상황 고등(기독교 관계)”이라는 제목 하에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조선예수교도의 불온사건 검거,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는 쇼와 13(1938)년 9월 제27회 총회 때 다년간 현안이었던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더욱이 이듬해인 14(1939)년 9월 제28회 총회의 결의에 의해 소속 3천 교회를 들어 국민정신총동원연맹에 가맹하고 총후봉공, 종교보국의 실을 보이는 등, 잘 시국 추이에 각성하여 외국인 선교사의 기반을 벗어나 일본화의 한 길을 걷고 있는 바 이 사이에 당국의 지도를 어디까지나 거부하려는 이른바 비혁신분자는 극비밀리에 불온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용의가 있어서 금년(1940) 4월 이래 평북, 평남, 경남 각도에서 수사에 착수하여, 용의자를 검거 구명(究明)한 결과..... 반국가적 기운 양성 등의 악질적인 범죄를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대략 판명되었는데,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종류의 예수교도의 반국가적 불온 분자를 탄압하여 뿌리 뽑지 않으면 도저히 예수교도 지도 단속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므로 고등법원 검사장 및 본부(총독부) 법무국장과도 협의하여, 치안유지법, 기타 관계 법령을 적용하며 단호하게 처단하기로 결정하고 9월20일 미명을 기하여 각도에서 일제히 검거를 단행하였는데 그날 중에 보고받은 검거인원은 193명에 이르며, 현재 예의 취조 중이다.”

 

이 시기에 순천노회 교역자들이 함께 구속이 되었다가 풀려나서 재구속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전국의 검거열풍이 순천노회까지 이르러 순천노회 노회원들도 11월 15일 구속이 되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구속된 대부분의 주요 인사들이 이 시기에 구속되었다. 이때부터 신사참배 반대자들이 대거 구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기철 목사는 이미 여러 번 구속된 일이 있었지만 순교를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구속된 시기가 1940년 6월 초였다. 한상동 목사가 구속된 날짜도 1940년 7월 3일이었다. 이기선 목사도 이미 여러 번 구속된 일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구속된 날짜가 1940년 8월이었다. 주남선 목사도 1940년 7월 17일에 구속되었다. 이인재 전도사 1940년 3월, 최덕지 전도사 1940년 4월, 조수옥 전도사 1940년 9월,이었고 손양원 목사가 구속된 것도 1940년 9월 25일이었다.

 

순천노회 노회원들이 구속된 원인이 이렇게 전국에 산재한 조선예수교도의 불온사건 검거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면 제일 중요한 원인은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뿐만 아니라 일제에 적극협력하기로 결의를 하고서도 이에 반항하는 자들을 검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을 검거한 이유를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선포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역시 천년왕국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예수의 계명에 저촉되지 않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선동했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천황 및 황대신궁에 대하여 불경스러운 언동을 했다는 것도 역시 신사참배 반대를 뜻하는 것이다.

 

전주대학교 교수인 주명준은 “순천노회 박해사건의 역사적 의의”라는 그의 논문에서 일제가 순천노회에 대하여 이처럼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탄압하였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첫째는 여수군 율촌면 애양원교회의 손양원 목사와 같은 전국적으로 저명한 신사참배 반대자가 소속되어 있는 노회이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아마도 이점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겠으나 순천중앙교회에 시무하고 있는 박용회목사가 소속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는 당시 한국사회에 있어 가장 저명한 독립운동가요, 반일투쟁가였다. 중앙에서 활약하던 박용희목사가 서울을 떠나 한국 최남단인 목포를 거쳐 순천노회로 내려 온 것은 일경의 탄압을 피하기 위함에서였다. 마지막으로 타도에 비해서 겉으로 보기에 신사참배로 인한 투옥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전남경찰서가 이 기회를 이용해 한 건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저인망식 검거를 하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여기에 순천노회를 지목하게 된 요주의 인물을 한 사람을 덧붙인다면 양용근 목사이다. 양용근은 그의 반일적인 행적으로 인해서 이미 일제가 감시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양용근은 일본 유학 시기에 관동대지진 사건 때 자경단에 체포되어 처형당하기 직전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다. 석방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렸지만 친구들에게 혹은 교회의 설교를 통해서 이 사실을 발설하고 있었다는 것이 일경에 감지되었다. 그가 일본대 법대를 졸업하고서 총독부 근무를 거부하고 고향에 학당을 세우고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며 민족운동을 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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