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 마가복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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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 마가복음 13
  • 연합기독뉴스
  • 승인 2020.01.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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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사람을 위해 있다 마가복음 2:23-28
이희우 목사
이희우 목사

 

흔히 신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주님으로 고백하는 데 반해 학자들은 사랑의 실천가’ ‘선생 예수’ ‘혁명가 예수’ ‘묵시적 환상가등으로 부르길 좋아한다. 근래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정의로 전복(顚覆)적인 지혜 교사로서의 예수가 각광 받기도 한다. 기존의 생각이나 관념, 세계관 등을 깨고 뒤집어엎는 예수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등장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입지를 흔들어 놓았다. 가히 핵폭탄급의 등장이랄까? 죄인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선을 정하고, 그 선을 절대 넘지 않던 그들이었는데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룰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존경받던 그들을 오히려 위선자로 몰아붙였다. 대놓고 세리 및 죄인들과 어울리며 자기 의만 자랑하는 형식적 율법주의자들을 밀어내셨다.

 

본문의 안식일에 관한 가르침도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교훈이었다. 안식일(sabbath)은 유대인들에게 할례, 정결법과 더불어 중요한 세 가지 율법 중 하나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들 지켰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안식일은 소중한 날, 그들은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를 빼앗기고 전 세계에 흩어져서도 안식일을 지켰다. 안식일은 그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임을 자부하는 표지였다.

 

그들은 안식일과 관련해 39가지나 규정을 만들어 지켰으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계명 중 네 가지나 범했다.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23), 마태복음에서는 이삭을 잘라 먹으니”(12:1)라 했고, 누가복음에서는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6:1)라 했다. 이삭을 딴 것(추수)도 이삭을 손으로 비빈 것(탈곡)도 비빈 후 쭉정이를 입으로 불어 넣은 것(키질)도 먹은 것(음식 만들기)도 다 계명을 어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즉각 항의했다(24). 죽음에 해당하는 죄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의 아무렇지 않은 듯 범하는 모습에 잔뜩 화가 났지만 원래 하나님은 일부러 낫으로 남의 곡식을 거두는 것은 도둑질, 강탈로 여겨도 배고파 손으로 훑어 먹는 것은 허락하셨다(23:25). 그게 하나님의 휴머니즘(humanism)이다.

 

현대 사회의 모토도 인본주의’(人本主義), 즉 휴머니즘이다. 그러나 지금도 곳곳에서 생명과 인권이 말살되고 있다. 이게 인간이 만든 휴머니즘의 한계다. 본문의 안식일 교훈을 통해 예수님의 휴머니즘까지 배우기 바란다.

 

1) 우선순위(the order of priority)가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울왕에게 쫓겨 놉에 있는 성막 근처를 지날 때 아히멜렉 제사장이 먹을 것을 구한 다윗과 일행들에게 진설병(陳設餠, ‘그 얼굴의 떡’)을 내어놓았던 것(삼상 21)을 예로 들며 제자들을 두둔하셨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덩이의 진설병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지만(24:9)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굶어 죽게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일단 살리는 것이 옳을까?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보다 살리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하셨다(25-26).

 

2) 사람이 우선이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사람들을 쉬게 하기 위함이었다. 안식일은 복된 날이며, 하나님께서도 쉬신 날이다(2:3). 그러므로 사람도 쉬고, 종도 짐승도 다 편히 쉬는 즐거운 날이다. 그런데 그 안식일이 유대인들에게 불편하고 힘든 날이 되고 말았다. 당당하게 걸어가면 될 것을 규정 때문에 대략 1km 정도씩 끊어 가야 했다. 병을 고칠 수도 없고(생명이 위험할 때 병의 악화를 막는 정도만 허용), 엘리베이터의 스위치나 집안의 등불조차 켤 수 없고, 자동차 운전도 전쟁도 할 수 없었다. 율법의 기저에 흐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율법만 있을 뿐 사랑이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안식을 범하며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제도와 법의 모순을 지적하고 안식일 본래의 의미를 회복시켜 주셨다.

 

3) 모든 날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8). 여기서 안식일에도라는 말은 다른 날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이다. 안식일이냐 주일이냐의 문제보다 그 날들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데 예수님은 모든 날의 주인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바울은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14:5-6)라고 했다. 사랑 없는 율법은 고통일 뿐이다. 율법을 613가지(~하라 248가지, ~하지 말라 365가지)로 세분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사랑이 아니면 의미 없다. 예수님이 주인 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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