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마가복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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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여행- 마가복음 15
  • 연합기독뉴스
  • 승인 2020.01.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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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제자를 세우시다 마가복음 3:7-19
이희우 목사
이희우 목사

최고의 핫 이슈 메이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삽시간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7-8).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의외다. 마치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신 듯하다.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피하려고 배를 대기시키라고 지시까지 하셨다(9). 낯선 모습이다. 성경은 그 이유를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다(10). 그들이 예수님을 죄로부터 건지실 구원자로 여기기보다 질병과 고통, 그리고 배고픔과 사회적 소외감으로부터 구원하실 분정도로 여기는 것과 영적 존재를 알아보고 귀신이 떠드는 것이나 무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미지를 다르게 떠벌리는 것을 우려하며 경계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함량 미달이면서도 슈퍼스타 되기 원하는 여느 사람들과 달랐다.

 

반면에 예수님이 오히려 찾아가 직접 부르신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13). 그들이 바로 열두 제자였다. 피할 사람은 피하고 부를 사람은 부른 예수님이시라면 우리는 자기 입맛에 맞는 구원자로 추앙하던 무리가 아니라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 세우신 의도대로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제자로 살아야 할 것이다.

 

1) 왜 열둘이었나?

 

12라는 숫자에는 상징성이 있다. 무엇보다 12는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숫자 아닌가. 구약시대 성전에 진설한 진설병(陳設餠, showbread)도 열두 덩이의 떡이었다. 예수께서 12명의 제자를 세우신 것은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의 공동체가 바로 구약의 열두 지파를 잇는 교회 공동체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명단이 마태복음과는 일치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과는 11명은 같은데 1명이 다르다. 본문과 마태복음에는 다대오’(Thaddaeus)가 있는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다대오가 없고, ‘야고보의 아들 유다’(Judas of James)가 등장한다. 다대오가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동일인물로 보이나 확인이 쉽지 않다. 또 사도행전에는 배신자 가룟 유다(Judas Iscariot)는 빼고 맛디아(Matthias)를 열두 제자로 소개했다. 이렇게 이름이 다른 것과 굳이 열둘을 채운 것, 또 핵심 멤버인 베드로(Peter)나 야고보(James)와 요한(John)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열두 제자로만 불린 것을 보면 제자들은 개개인보다 12라는 숫자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누가 포함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일까? 13절의 예수께서 부르시니’(현재형), 제자들이 나아온지라’(과거형)라는 동사의 시제를 보면 예수님은 지금도 불러 세우실 자를 찾고 계신다. 그 부르심이 현재형이라면 오늘 우리도 부르고 계신 셈이다.

 

2) 다양한 사람들

 

12제자는 모두가 다 가난하지는 않았다. 베드로와 안드레(Andrew), 야고보와 요한이 배를 소유했으니 당시의 중산층 정도였고, 세리였던 마태(Matthew, 레위)도 재산이 꽤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성향도 다양했다. 마태는 로마의 앞잡이, 혐오대상이었고, 가나안인 시몬(Simon the Canaanite)이나 가룟 유다는 민족주의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복음에서 셀롯 시몬(Simon the Zealot)이라 소개된 시몬은 열심당원이었고, 가룟의 뜻이 단도, 곤봉이었으니 유다는 당시 테러리스트, 민족주의자였을 수 있다.

 

성격도 다양했다. 베드로는 직선적이며 다혈질이었고, ‘보아너게’(Boanerges, 우레의 아들)라 불렸던 야고보와 요한은 야망적이고 충동적이었으며, 빌립(Philip)은 의구심이 많았고, 바돌로매(Bartholomew, 나다나엘)는 정직하고 직선적, 진취적이었다. 또 도마(Thomas, 디두모)는 의심이 많았고, 유다는 음흉하고 이중적이었다.

 

3) 세우신 3가지 목적

 

14-15절을 보면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도 하며’, ‘귀신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 세 가지였으며, 핵심은 함께 있기 위함이었다. 원하는 것이나 얻고 돌아갈 사람은 수천, 수만 명이 몰려와도 기뻐하지 않던 예수께서 모든 일과 모든 순간에, 그리고 모든 장소에서 언제나 함께 하기 위해 제자들을 세우셨다. 또 함께 하며 에너지를 충전한 후에는 흩어져 전도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었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쓸 뿐만 아니라 흩어져 전도해야 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는 능력의 사람으로 세워졌다. 마태복음에서는 귀신 쫓아내는 것에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추가했다(10:1).

 

예수님을 따라 집으로, 바닷가로 몰려든 병들고 귀신들린 무리는 단지 회복이라는 자기들의 목적달성이 목표였지만 작은 예수가 되어 갈릴리는 물론 지중해 곳곳에까지 누비고 다녔던 제자들은 오직 주님의 소원인 영혼 구원이 그들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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