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법 - 폭행에 관하여(출 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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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법 - 폭행에 관하여(출 21:12-27)
  • 연합기독뉴스
  • 승인 2020.02.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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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대 목사
신용대 목사

종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은 폭행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단 하번이기에 일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귀하고 귀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나의 몸만 귀한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9:6). 그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이 어떠하든지 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보고 그 사람이 깨닫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귀하게 보지 않고 때려서 죽였거나 계획을 세워 죽였다면 제단에 숨었다 해도 끌어내려 죽이라(12) 하심으로 내 생명이 귀한 것처럼 남의 생명도 귀중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고의가 아닌 과실로 죽였을 때 일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장소,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요단강 양편에 지정하신 도피성에 가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중요한 의미는 사고로 인한 죽음의 책임을 하나님 자신에게 돌림으로 피해자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우연한 사고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결국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계획을 가지고 살인한 사람은 제단 뿔을 잡고 회개와 긍휼을 간구한다 해도, 용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달으라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을 여러 경우들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치고, 저주하는 자(15,17) 우리에게는 부모를 공경해야할 특별한 책임을 주셨습니다. 부모를 쳤다면 죽지 않았더라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어도 저주하거나 욕을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적대행위이며, 스스로의 생명을 끊어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른 사람들보다 갑절이나 중요하게 보십니다. 부모님이 때론 옳지 않고, 부모님으로 분노가 쌓이게 되었어도, 부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도 필요 없고 짐승처럼 막 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에게 부모가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중요한 징검다리인 것입니다.

사람을 납치한 자(16) 사람을 납치해서 그를 노예로 팔거나 종으로 부리든지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미 긍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잔인한 탐욕에 대하여서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폭행을 가한 자(18-19) 폭행으로 사람이 죽었다면 가해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지만, 지팡이라도 잡고 다닐수 있다면 죽음은 명하고 그 행한 것에 대해 그 사람이 완치될 때까지 뱅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예의 생명이라도 귀중한 것이다(20-21, 26-27) 남종이나 여종은 주인의 재산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생명부분에 대해서만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인이 쳐서 죽였을 때는 그 형벌을 면할 수 없었고, 상해를 입혔을 때는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노예가 금전적으로 거래되어도 생명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잉태한 여인에 관한 것(22-25) 놀랍게도 태아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계명을 적용시키십니다(22).지금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낙태가 얼마나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의식구조가 생명을 우습게 압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만이 주시고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아름답게 사용해야 합니다.

23-25절 말씀만큼 오해되고 악용되어왔던 말씀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을 무자비하고 보복에 찬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은 개인적인 복수를 허용하신 것이 아니라, 재판의 기준입니다. 재판의 한계와 기준을 설정함으로 공정한 보상을 할 수 있으며, 고통당한 만큼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약점이 있으면 다른 것까지 뒤집어씌우려합니다. 약점을 이용하여 보상을 더 요구하거나 받아내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언제나 공평하고 적절하게 벌금을 가하게 하신 것이지, 그에게도 똑같은 신체적 가해를 가하라는 뜻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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