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여백 | 한파에 멍든 목사의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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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여백 | 한파에 멍든 목사의 가슴
  • 정찬성 목사
  • 승인 2010.03.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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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감리교회 정찬성 목사

유 권사님, 지난 주간은 너무 추워서 기절할 정도였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나가면 예배당 안이 영하 2-3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대상 찻잔의 물이 얼어있어서 기도하다가 목을 축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두 줄짜리 전기스토브에 의존하는 강대상 목사의 기도자리는 한데나 마찬가집니다. 손이 곱아서 기도도 성경읽기도 묵상도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눈 쌓인 교회 마당은 넉가래로 역부족입니다. 갑자기 추워서 작년 늦가을에 월동 준비한 것으로는 한계였습니다. 교회 본당으로 들어가는 보일러가 얼어 터졌습니다. 서재로 들어오는 보일러는 얼어 꼼짝을 안합니다. 거기다가 교회식당의 지하수와 연결된 모터는 열심히 도는데 주방의 수도 밸브는 하나는 물이 나오고 설거지 상자와 연결된 쪽의 밸브는 얼어 있어 물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현재 가동 중인 식당수도의 눈물방울이 정지되면 하나마저 얼어붙어 식당을 폐쇄하고 봄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파와 씨름하는 농촌교회의 일상

갑자기 한파가 닥친다고 해서 보일러가 일정시간마다 자동으로 돌도록 조치를 하고 예배당의 나무난로의 재를 쳐내면서 통나무 땔감을 전기톱으로 잘라서 대비를 했습니다. 이만하면 얼마든지 한파와 맞설 수 있겠다 싶어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사택-교회식당-서재-예배당 등 네 대의 보일러가 열심히 돌아주어야 안심입니다. 그런데 첫 한파에 예배당의 보일러는 터졌습니다. 외출로 눌러놓은 보일러는 한파에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은 것입니다. 식당도 물이 들어가지 않아서 물 보충 시그널입니다. 서재의 보일러는 문제가 없는데 연결된 파이프가 얼어서 온기는 물 건너가고 차가운 바닥에 불통입니다. 사택 보일러는 지하에 있어서 무사합니다. 지하실에 있는 화초들을 관리하느라 약간의 거룩한 낭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실의 온기를 위해서는 연탄난로를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도시교회나 가정의 경우 도시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면서 더 경제적이고 더 덜 신경을 쓰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농촌에 대한 정책적인 차별을 느끼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표를 의식한 효율성에 신경질이 나기도 합니다. 이런 끈질긴 관심과 거룩한 낭비덕(!)으로 첫 한파가 들이닥친 주일을 무사히 넘기고 주일저녁예배를 마친 후 풀린 긴장으로 느긋하게 아침을 맞았습니다.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친 교인들의 몸에 밴 절약정신이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보일러마다 몽땅 외출시그널을 선택하고 집으로 간 것입니다. 심지어는 서재에 들어왔던 아내마저 ‘외출시그널’을 선택했습니다. 거룩한 낭비에 힘입어 한파와 싸워 이겼던 보일러들이 여지없이 패배했습니다.


한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몇 가지 법칙들

내일 모래부터 장류사업팀이 메주를 쑤어야 하는 곳이 교회식당과 그 주변들이기 때문에 전기스토브와 열선을 이용해서 하룻만에 해결했습니다. 열 번도 더 오가면서 절약이 몸에 밴 고마운 교인들에게 거룩한 낭비를 가르치지 못한 목사를 자책했습니다. 서재는 의외로 문제가 어렵게 꼬입니다. 보일러는 녹였는데 파이프가 안 녹습니다. 보일러를 강하게 가동하면 보일러가 터지는 일이 생깁니다. 서재의 난방을 위한 미션은 언 파이프를 녹이는 일입니다. 전문가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가장 신빙성 있는 결론은 이런 것입니다. 파이프에 열선을 감아라. 그리고 전기와 연결하고 그 주변에 정미소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왕겨를 수북하게 덮어서 “왕겨 옷”을 입히고 기다려라. 이틀이 걸릴지 사흘이 걸릴지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 상황을 악화시키지는 않는다. 서서히, 무리 없이, 원형을 보존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유 권사님, 소 키우는 성도 가정에서 왕겨를 다섯 포대나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건재상에서 전기열선을 50미터를 잘라왔습니다. 그리고 집사님들과 함께 열선을 배관에 칭칭 감았습니다. 그리고 ‘왕겨옷’을 두텁게 입혔습니다. 그리고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아마 주일이 지나고 서서히 뚫릴 것으로 믿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최소한 악화는 안 될 것이니까요. 권사님, 때로는 절약정신보다 더 귀한 거룩한 낭비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나드향이 든 옥합을 깨서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닦았던 일도 거룩한 낭비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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