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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마음의 천국을 회복하라!
2009년 02월 25일 (수) 14:55:39 이건영 목사 webmaster@ycnnews.co.kr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제자가 랍비에게 와서 “랍비여! 제 아내가 중병이 걸려 있으니 기도해 주세요!”라고 강청하였습니다. 랍비는 “그래, 내가 기도할 것이니 안심하고 돌아가게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제자가 와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랍비 선생님!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분명 직접 죽음의 천사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버렸는데 말이야!” 제자의 귀에 랍비의 말씀이 제대로 이해되겠습니까? “좌우간 랍비님, 제 아내가 죽었단 말입니다!!” 그 때 랍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천사가 자네 아내를 맨 손으로 목 졸라 죽였음이 틀림 없구만.....!”

먹으면 죽을 것이 확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나이입니다. 그리고 죽음입니다. 나이와 죽음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게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마치 항해 중이던 선박이 기름을 보충하기 위해 잠시 어느 항구에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주유가 완료되면 다시 떠나 최종 목적지로 가듯이 죽음은 천국 가는 관문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디. 엘. 무디께서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니 이 땅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나 천국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좋은 것이 천국 가는 길이라면 나는 날마다 죽었을 것이다!” 물론 자살을 권장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자살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하나님만 다스릴 수 있는 생명을 자신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니 올바른 죽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은 바로 죽음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영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회가 선하게 반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움의 빛이요 썩어짐의 소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의무와 특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직’ 다가오지 않은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에게는 ‘이미’ 이루어진 천국이 있습니다. 즉 주님 모셨기에 만들어진 마음의 천국입니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렘33:10-11).

“소리”라는 단어가 6번이나 기록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관계회복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 서로간의 관계회복 및 자신과의 관계 회복의 소리가 다시 들려야 합니다. 그런 관계회복은 임마누엘 예수님을 모신 마음에서 시작되어 입술과 삶의 찬양과 감사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럴 때 자살할 일도 물러가고 주님 일하다가 복을 받고 들림 받는 축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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